가을의 끝자락, 비가 오는 날

 

오늘은 가을과 겨울이 손을 맞잡은 듯한 날씨였다. 하늘은 잿빛으로 흐렸고, 차가운 비가 부드럽게 대지를 적셨다. 한동안 맑고 쾌청했던 가을 하늘을 뒤로하고, 겨울이 슬그머니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것 같았다.

 

우산을 쓴 채 거리를 걸었다.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은 빗물에 젖어 윤기를 띠고 있었고,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흔들며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했다.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쓸쓸하면서도 평온해 보였다. 마치 계절의 끝자락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것 같달까.

 

비가 오면 사람들의 발걸음도 느려진다. 차가운 바람과 함께 비가 얼굴을 스칠 때마다 마음도 한 박자씩 천천히 고동친다. 창밖으로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마저 멈춘 듯한 기분이 든다.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 계절에는, 평소보다 더 많은 감정들이 떠오르는 것 같다.

 

차가운 빗방울이 내 어깨를 적셔도, 마음 한구석엔 묘한 따스함이 감돈다. 어쩌면 이런 날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, 잠시 멈춰 서서 나를 위로하는 시간을 주는 날인지도 모른다. 가을과 겨울 사이의 경계에서, 이 비는 모든 것을 잠시 고요하게 만들어준다.

 

비가 그치면 또 새로운 계절이 올 것이다. 하지만 오늘은, 이 흐릿한 하늘 아래서 비와 함께 머물고 싶다. 계절의 끝자락에서 느낄 수 있는 이 감정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으니까.